교구장/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에 대한 설명에는 기본적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죽음심과 부활, 하느님 나라의 확장과 실천' 과 같은 세가지 요소가 담깁니다. 또한 복음은 명사이면서 형용사이고 동사이며, 그 개념과 정의는 명쾌하여야 하고 말로 설명되어야 하며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전례와 신학과 선교의 중심내용은 복음입니다. 전례와 신학고 선교는 복음을 드러내고 전하는 현장이고 과정이어야 합니다.
뉴몰든의 크라이스트성당을 방문했을 때, 성당입구 게시판에 '우리 교회는 복음적입니다(Our church is evangelical)'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성공회 국제전례강연에서 만난 우간다 성공회 세베이교구의 모세스 사제도 우간다교회가 복음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복음적인 교회'라는 표현의 의미를 물었더니 그가 대압하기를 '단순히 성당에 나오거나 예식에만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과 인격, 복음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재발견하고, 복음을 만나고, 복음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교가 시작됩니다. 선교의 시작점은 복음의 발견과 만남입니다.
선교란 무엇입니까? 선교는 첫째, "이미 현존하시고 일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 "창조세계 전체를 거룩하신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이끄는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 이러한 알아차림과 참여는 온전한 선교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로 명사이면서 형용사이고 동사입니다. 선교의 개념과 정의는 명쾌하고, 선교는 충분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선교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선교에 최우선적으로 협력하고 동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교적이어야하며, 선교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지 말고 선교를 생각하면, 교회도 살고 선교도 삶니다. '
선교는 교회의 생명인 복음에 대한 실천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이해는 선교의 모습을 좌우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는 선교의 모습을 좌우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관상적 실천이 이 시대의 패러다임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는 복음의 협력자로서 교회의 본질'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교회치고 복음을 말하지 않은 적이 없고, 선교를 말하지 않은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복음을 말하고, 선교를 말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교회다움과 교회 다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새롭게, 선교로 다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딪혀야 할 모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복음과 우리가 살아내는 복음의 간극을 좁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동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바다에 그물을 던져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를 건져 올렸을 때 신기하게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이 시대에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려면 마찬가지로 복음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고백하는 복음과 일상에서 살아내는 복음의 간극이 좁혀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교구 안에 '새롭게' 하는 복음의 활동과 '다함께' 하는 선교의 연대가 형성되길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밀알 한 알처럼, 밀가루 반죽의 누룩처럼 그 시작은 미약합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새롭게, 다함께' 확장될 것입니다.
'의식있는 행동에는 어떤 낭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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