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이단과의 논쟁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자체도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단이었다. 유대교는 AD 90년경에 얌니아 회의를 개최해서 자신들의 성경을 정경화 한다. 이 회의에서 율법학자들은 유다교의 경전 목록, 즉 구약성경의 정경을 확정했다. 유다인들은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24권으로 확정함으로서 당시 신흥종교였던 그리스도교와 결별한다. 그 이후 쓰여 졌다고 추정되는 요한복음에서는 열 두 제자의 이름이 전부 거론되지 않는다.(요한 1:35-51) 하지만 유대교와 아직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면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상황을 나타내는 공관복음서에서는 열 두 제자의 이름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배반자 가리옷 유다의 이름까지 끼워 넣으면서 숫자를 맞추었다. 유대교의 열 두 지파를 계승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치열한 고민을 한 복음서 저자들의 흔적인 것이다.
그러면 요한복음서는 또 어떠한가? 요한복음서의 일차적인 집필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강생이었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도는 책 마지막 부분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이런 신학적인 성찰의 담겨있는 이 복음서는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아 회당에서 내어쫓기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 요한 공동체 성원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기 위해 쓰여진 복음서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소아시아지방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과 바울로의 맹렬한 선교로 소아시아에 생겨난 교회들에는 또 다른 이단들과의 투쟁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서로 다른 그리스의 신들을 경배하는 온갖 혼합주의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결과물이 바로 복음서다.
이단이 있었기에 오히려 그리스도교는 더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고 본다면 오늘 우리 주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신흥종교들에 대해서 마냥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이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올바른 가르침을 신학적인 성찰을 통해서 더욱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런 상황을 대변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쓰여 졌다.
✠황인찬베네딕트사제(거창기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