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일입니다. 한라산에 눈이 쌓인 대림절 첫 주간, 주교좌성당 밖 성탄트리가 찬 공기를 마시며 서있습니다. 남포동 광장에는 성탄장식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제 곧 점등식과 함께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무수한 행인들에게 설렘을 주겠지요.
성탄 메시지를 준비하며 국제시장통을 걸어서 서점에 들러 시집 한 권을 샀습니다. 20대 때부터 만나기 시작한 시인이니 40년 지기인 셈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눈 감고 있자니, 시집 속의 시제들이 새처럼 날아오고, 생각의 문 앞에 택배로 왔습니다. “낙과(落果), 낙곡(落穀), 낙석(落石), 낙수(落水), 낙심(落心), 낙법(落法).”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탄, 하느님의 독생자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을 낙법(落法)이라 할 수는 없을까요? (오늘은 유도의 낙법 말고 엉뚱한 낙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말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로고스를 법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낙법이라고 불러보는 것입니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과일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낟알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나와 너, 우리를 위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고 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성탄이야말로 책임지신다는 것이고,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만유와 만물을 위하신다는 낙법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낙법이 참 빛이 되도록, 이 성탄절에 대한성공회의 헌장과 법규는 낙법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때가 되면 떨어지는 것을 겁내지 않게 제대로 된 낙법을 배우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하여 10 • 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 미얀마와 이란의 민주화를 외치는 이웃들, 우리의 이름 모를 이웃들에게도 성탄이라는 낙법의 기쁨이 택배로 도착하길 희망합니다.
교구장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이 글은 정호승의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서 착상을 얻고 제목과 말마디를 빌어다 썼습니다.